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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안동 제비원 석불

5,110 2016.09.0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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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제비원 석불

고려 11세기, 높이 12.38m, 보물 제115호, 경북 안동시 이천동.

제비원(燕飛院)석불은 태화산 기슭 연미사라는 절에 있다. 이 마애불은 거대한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별개의 돌로 환조(丸彫)하여 올려놓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이라는 것이 큰 특징이다. 머리의 뒷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앞쪽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데 육계가 큼직하다. 또 눈, 코, 입의 선이 각지고 매우 뚜렷하여 이목구비가 분명한 인상이다. 그리고 자연암석으로 이어진 목에는 삼도(三道)가 희미하게 나마 새겨져 있다. 뚜렷한 얼굴 부분과는 달리 큰바위 위에 새긴 몸체의 선은 비바람에 많이 씻겨서인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법의는 두 어깨를 다 감싼 통견의(通肩依)를 표현하여 왼쪽어깨에서 직선으로 뻗어 내린 옷주름과 교차하고 있다. 거의 노출된 가슴 밑으로는 내의(內衣)자락이 수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손은 가슴께에 다른 한손은 배에 대고 있으며 엄지와 장지를 맞대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하고 있다(아미타불은 각기 사람이 타고난 근기에 따라 천축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있는데, 중품하생인의 손모양은 중품의 근기를 타고난 사람을 하생으로 이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불상의 발 밑에는 단판연화문(單瓣漣花文)이 음각되어 대좌를 표시하고 있다.

제비원이란 이름에서 '원(院)'은 사람들이 여행길에 쉬어가던 일종의 여관을 말한다. 영남에서 충청도나 경기도, 서울로 갈 때에는 안동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야했는데, 그 곳에 있던 것이 제비원이다. 이곳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제비원에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이곳에서 심부름을 하던 연(燕)이라는 처녀가 있었다. 착하고 불심이 깊은 처녀 연이를 마을총각들은 사모하였다. 이웃마을에 김씨성을 가진 마음씨 고약한 부잣집 총각조차 연이 처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마음씨 고약한 김씨 총각은 비명에 죽어 저승에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은 총각이 살아생전에 악덕을 많이 쌓았으므로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날 것인데, 건너 마을의 연이가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선행 창고가 가득 쌓여있으니 좀 꿔서 쓰면 다시 살아 돌아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저승에서 연이의 선행(善行)을 빌려쓰고 살아난 총각은 이승에 돌아와 연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자기의 재물을 나눠주었다.

큰 재물을 얻은 연이는 이를 모두 부처님을 위해 쓰기로 하고 법당을 지었다. 큰 법당을 짓느라 5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마지막날 기와를 덮던 와공이 발을 헛디뎌 지붕에서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높은 지붕에서 떨어진 와공의 몸이 마치 기왓장처럼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순간 와공의 혼이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절을 제비사 또는 연미사라고 부르고 이 일대를 제비원 또는 연미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이는 서른 여덟이 되던 해 동짓달 스무사흗날에 죽었는데, 그날 저녁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큰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지금의 석불이 나타났다고 한다. 공덕을 쌓은 연이가 부처로 태어났기에 사람들은 이 부처를 미륵불으로 여기고 치성을 드렸다(아들을 낳게 해달라거나 집안이 두루 편안하게 해달라고 빈다).

무가의 성주풀이에도 "성주의 근본이 어디냐?"로 시작하여 성주의 근원이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라고 한다. 성주란, 민간 신앙에서 집집마다 그 집의 부귀영화와 평안을 지켜주는 신을 말한다. 그러한 신의 근본지로 여겨졌다는 것은 민간 신앙의 기원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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