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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미륵불출현의 의의

3,818 2016.07.1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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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출현의 의의

불교에서 최고의 이상적 인격을 佛陀라고 하고, 인생의 최종 목표도 이 불타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불타는 유일 절대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깊은 수행과 보살행을 통해서 이를 이룰 수 있는 인격체를 말한다,
이 불타에 대한 신앙은 ‘석가 세존’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부터 인도에서는 신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석가 세존’이 출가 하셨던 최대 목적도 이 불타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고, 또 그가 도를 이루자 새로운 불타가 출현하셨다고  당시 인도인들은 굳게 믿고 그의 슬하에 모두 모였던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오랜 동안 인도인의 뇌리속에 염원되고 있던 믿음이 실제로 현실화되었을 때 일어난 열광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도인의 오랜 精神史의 과정가운데서 발생한 불타 신앙은 과거의 시대에도 역시 불타가 출현하였고 현재에도 석가 세존이 불타를 이루었으며 미래에서도 이와 같은 인물이 출현할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발전과정을 가질 것이다. 실지로 아런 세계관 속에서 생성된 것이 이른바 석가모니를 정점으로 한 ‘과거칠불’ 사상이다. 과거불사상은 팔리장부 경전 및 한역 자아함경 등에 ‘과거칠불의 가계,가족,제자,보리수 아래의 성도, 최초설법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러한 과거불 신앙에 대한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미래불에대한 열망이 민중가운데서 발생하리란 것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왜냐하면 한번 入滅한 불타는 다시 지상에 나타내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불교신앙관으로 해서 현실고에 시달리는 중생의 바램은 또 다른 불타의 출현에 의하여 구원을 희구하는 보상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불타의 재출현을 바라는 음성은 높아진다. 인도의 역사관은 과거에 가능했던 것은 미래에도 역시 과거와 똑같은 정도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래불은 구세주의 모습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이 미래불이 바로 마이트레야(미륵)이다. 미륵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원시경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미륵이야기가 단순히 경전상의 설화형식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미륵불의 설법내용, 사상과 함께 이미 구체적인 신앙으로 안도 사회에 뿌리내렸던 것이다. 특히 ‘석가세존’이 열반에 드신 이후 20년이 지나서 이미 ‘미륵님’에 대한 신앙은 유행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륵님이 현재는 도솔천에 계시다가 우리 인간세계에 내려와서 ‘부처’가 되어 인류를 구제하신다는 강력한 구원 신앙으로 발전한 것이 특색이다.
미륵불이 구원의 부처가 된 유래는 물론 사상적인 발전에 의한 것이지만, 미륵이라는 명호 자체에서도 발견된다. 미륵은 산스크리트어로 Mirta에서 유래된다. 미트라는 ‘친구’라는 의미를 가진 옛 인도의 신이었다. 이는 ‘우정, 친절, 호의, 선의’등으로 사용되는 말이며, 이것에서 한역으로 ‘慈’라고 번역되어 ‘慈氏彌勒尊佛’이라는 불타의 명칭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미트라 신은 인도뿐만 아니라 이란에서도 강력한 신이었고 그리스, 이집트 등에서도 이 신앙은 대 유행이었다고 얘기되고 있다. 이 미트라 신의 성격은 ‘계약, 진실의 말’이다. 따라서 미륵이라는 이름의 본래 의미는 ‘계약, 약속’이며, 이에서 미륵볼의 이름으로 선택되어진 것이라고 여익구는 주장한다. 하여튼 불교에서 慈悲라는 말이 가냘픈 사랑이나 동정이 아니라, “기쁨을 주고 슬픔은 내가 갖는다.”라는 강한 의지의 표명을 의미하듯이, 이 “자씨미륵존불‘도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는 맹약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구원의 부처님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 구원의 불타신앙으로부터 대상불교 발전의 싹은 피워졌으며, 무수한 불, 보살신앙이 출현하면서 미륵신앙과 사상은 크게 천명되었고 조직화 되어갔던 것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신앙이 확립되면서 文殊, 普賢, 觀音, 地藏과 같은 불보살 신앙이 민중가운데 유포된 것이 불멸후 600년경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이 미륵신앙은 민중 속에서 훨씬 이전부터 신봉되었던 것을 아울러 알 수 있는 일이다.
미륵제경(彌勒諸經)에서 불타의 초월적인 모습을 무수히 보여주고 있다.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은 것에 대하여 알아차리고 불타께서 대답을 해주신다든지  도솔천상의 이상적인 극락의 모양을 시현(示現)하시는 것 등은 불타로서의 일체승자(一切勝者)요, 일체지자(一切智者)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불타의 초월성으로부터 이 미륵불에 대한 영험신앙(靈驗信仰)은 곧바로 민중에게 퍼졌던 것이다.
 특히 미륵사상을 확립한 ‘無着菩薩’의 경우, 이 영험은 생생하다. 무착은 불멸 후 900년경에 북인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찍이 불교를 배울 적에 당시 성행하던 ‘미륵신앙’을 독실히 지니고 미륵님을 친견하기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12년간이나 일심으로 미륵기도를 하였으나, 미륵님의 감응을 얻지 못하고 인연이 없음을 탄식하고 산을 내려 오는 데, 어느 마을에서 온 몸에 벌레가 우글거리는 병든 개 한 마리를 보았다. 그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어서 손으로 그 벌레를 모두 떼어내니 그 벌레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마을에서 밥을 빌어다가 개도 먹이고 벌레에게도 먹이었다. 그러자 개는 밥을 먹고는 푸른 사자로 화하여 껑충 뛰어 가는데 7보관을 쓴 보살 한 분이 그 사자를 타고 광명을 발하면서 무착에게,
“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의 정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정진하게 하였고, 또 너의 자비심을 시험하려고 병든 개를 나타내어 보이었느니라. 다시 만나게 되리라.”
하고는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무착은 허공을 향하여 무수히 예배하고 다시 기도하던 산에 돌아가서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미륵님’이 계시는 도솔천궁이 환히 나타나고, 또 ‘미륵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무착보살은 ‘미륵님’에게 들은 법문을 그대로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글로 써낸 것이 “요가사지론(요伽師地論)”등이다. 그리하여 미륵사상을 근본으로 한 “요가유식학(요가유식학))”이 구체적으로 조직되어 후세에 ‘요가학파’가 되고 “유가학, 법상종(法相宗)”이 되었다.
이후 이러한 미륵영험은 중국, 한국, 일본을 통해서 무수히 전개되었고 그 신앙은 깊숙히 민중가운데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 나라 에서는 불교가 전래되어 오면서 미륵신앙이 민중화되어 지금도 시골 논, 밭둑에서 가끔 돌로 깍아 만든 미륵불상을 보게  된다. 이 미륵신앙은 삼국시대를 비롯하여 고려,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민중의 해원사상(解院思想)으로 발전하여 갔던 것이다.
신라의 ‘화랑’을 ‘미륵선화’라고 하였고 또 화랑의 낭도를 ‘龍華香徒’라고 한바 용화는 곧 미륵님의 세계라는 뜻이며, 향도는 ‘용화교주 미륵님’께 향을 사르는 교도라는 뜻이니 미륵신앙의 인연이 국가적 시책에 까지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도인의 현신성불(現身成佛)이야기가 나온다. ‘박박’은 아미타불을 지성으로 염불하고, ‘부득’은 ‘비륵불’을 지성으로 염불하여 도를 닦았다. 어느 날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환 여인의 산기(産氣)를 도와주고, 그 여인이 목욕한 물로 여인이 권하는 대로 목욕을 하자 몸이 금빛으로 변하고 연꽃이 솟아나면서 부득이 먼저 미륵불로 화현했다는 이야기다.
즉 이러한 화랑과 현실성불의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이 단지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신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륵님이 곧 ‘現人身’으로 구현된다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자세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백제시대의 미륵신앙은 더한층 구체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이 땅위에 곧 미륵불의 ‘용화세계’를 실현한다는 형태였다. 백제의 미륵사는 36년간이나 국력을 다하여 지은 절로서 ‘미륵삼존’을 모시고 용화세계의 ‘삼회설법’을 그대로 사회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정책에 실현하였다.
이런 점에서 신라의 미륵신앙은 인격적인 구현을 그 이상으로 하였고, 백제의 미륵신앙은 국토적인 구현을 그 이상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여간 우리 신앙의 이런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방면의 발전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배제하였으며, 이러한 민중신앙의 전통은 억눌린 백성들의 염원의 대상으로 꽃피워 갔다. 그리하여 고려의 무신정권 때 노비의 亂에서 노비들이 미륵불의 재림을 염원한 것이라든지, 이조의 무수한 반란가운데서 민중의 신앙이었던 것은 이 미륵신앙이었다.
최근세에 있어서 東學革命도 그 사상적 바탕은 미륵신앙에 두었으며, 근세의 민족신앙으로 풍미했던 증신교의 교주 강증산도 “나를 보려면 금산사의 미륵불을 보라” 할 정도로 미륵신앙의 뿌리는 끈질기고 깊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서 미륵신앙은 구세적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이것을 이용하려는 삿된 무리가 많이 나와서 미륵신앙의 본래의 뜻을 저버리고 혹세무민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백백교(白白敎)나 용화교(龍華敎)의 무리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불교계내부에선 오히려 미륵신앙을 터부시하는 경향마저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미륵신앙의 바른길은 “十善道”를 실천하는 길이다. 미륵이 현재계시는 도솔천은 십선공덕의 과보로 성취되었으며, 도솔천에 태어나거나 미륵의 제자가 되려면 십선도를 닦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실현될 ‘용화세계’는 십선도로 성취되고 十善業을 성취한 중생이 나게 된다. 또 미륵님은 일찍이 십선이 성취된 중생세계에 출현하기를 발원하였다.
따라서 미륵신앙의 올바른 길은 십선도를 성취하는 길이다. 일찍이 원효성사(元曉聖師)도 그의 “미륵상생경종요”에서 이 십선 사상의 중장을 논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욱 나아가서 미륵신앙의 도솔왕생을 因果로서 미륵불의 칭명(稱名)을 강조하였다. 즉 범부 중생은 미륵을 칭명함으로서도 왕생할 수 있다는 구원성취의 쉬운 길을 제시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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