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421
  • FAQ
  • 1:1문의
  • 새글

미륵

미륵신앙의 고향-영암 월출산

6,985 2016.04.29 12:31

첨부파일

짧은주소

본문

미륵신앙의 고향-영암 월출산

저 神異한 봉우리로 새 세상 비원 용솟음

달이 엉금엉금 산기슭을 기어오른다. 삐죽삐죽 톱니바퀴 모양으로 솟아오른 능선은 마치 타오르는 달빛이 하늘로 치솟는 형국이다. 달빛이 이글거리는 화염이 되어 훨훨 타오르는 산, 그래서 이름도 월출(月出)이라 했을 것이리라.

월출산은 그대로가 미륵의 성지이다. 골골, 구비마다 미륵의 향훈 어리지 않은 곳이 없다. 산마루에서 계곡 언저리를 지나 산아래 마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든 미륵이 즐비하다. 영암과 강진, 장흥 등 호남 곡창지대에 우뚝 솟아오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양태가 저 금강의 그것을 박은 듯 빼어 닮아 한껏 신령함을 풍기는 탓도 클 것이다. 월출산이 일찌감치 남도 민간신앙의 메카가 된 것은 이 땅이 타고난 일종의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곡창지대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질 수밖에 없었을 민초와 대지주와의 갈등, 빈부격차에서 오늘 가난한 자의 상실감, 바다에 인접한 지정학적 여건으로 숱하게 겪었을 왜구의 침탈, 민초들의 희망을 짓밟는 온갖 형태의 구조적 압박과 시련, 그리고 모순들 …, 이런 것들로 인해 지친 민초들이 어찌 이 평야 가운데에 우뚝 솟은 월출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월출산에 머물며 오늘도 민초들의 애환을 어루만지고 있는 미륵을 찾아 나그네는 발길을 채촉한다. 저 멀리에 그 신이(神異)한 모습이 어렴풋이 시계(視界)에 들어오자, 언제나 그랬듯이 그 오묘한 자태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고.

보기만 해도 신령스러운 산, 월출. 금강산의 산신이 홀연히 내려와 빚어내지 않았다면 어찌 저런 오묘한 자태가 가능할 수 있으랴! 불꽃이 여기저기에 치솟고 민초들의 염원을 담은 산 기운은 하늘을 향해 한껏 뻗쳐올랐다. 풍수학자 최원석의 “지장(地藏)의 깊은 살에 돋아 있는 바위들은 부처의 뼈(佛骨)가 뉘 아니며, 맑다 못해 푸른 물빛 도는 산기운은 불신(佛身)의 서기(瑞氣)가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표현이 아니더라도 이곳이 예삿 산이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월출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륵신앙은 말 그대로 민간, 즉 민초들의 염원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신앙의 표본이다. 이곳에는 미륵을 논함에 있어 으레 등장하는 궁예나, 견훤이 등장하지 않는다. 텁텁한 얼굴의 미륵부처님과 해안 마을에 드문드문 세워진 매향비에 소박한 민중들의 삶이 한 서린 한숨과 함께 전해 내려올 뿐이다. 남해바다 장흥땅의 삼십포 앞 언덕배기에 세워진, 천명이 함께 원을 내워 향을 묻었다고 새겨진 매향비(1434)의 글씨는 서투르고 엉성하다. 영암 미암면 채지리의 무덤 군 옆에 초라하게 세워진 매향비(1430)에도 형제가 힘을 모아 세웠다는 기록이 엉성한 글체로 더듬더듬 남아 있다. 이렇게 이곳의 민중들은 때로는 동리의 전 대중들이 힘을 모아, 또 때로는 한 가족이 소박하게 개펄에 향을 묻고 미륵을 염원했던 것이다.

월출산 미륵신앙의 특성을 되뇌며 산정(山頂)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민간신앙의 메카라 할만한 칠치계곡을 지나 위치해 있는 용암사지의 마애미륵님을 친견하기 위함이다. 이미 여러 차례 거론했듯이 용이란 미륵신앙과는 따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영물.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머금고 있다는 용알바위가 있어 절 이름도 용암사라 했다. 아, 저 부처님. 월출 마애미륵의 대표격이라더니, 과연 장엄한 자태로구나! 숨을 고르게 하고 합장삼배를 올렸다. 그리고는 찬찬히 살펴봤다. 이 부처님은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애환을 들어주셨을까. 그래도 저 미소를 천년을 변함없이 이어오고 계시니, 어찌 고개가 숙여지지 않으리. 이곳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의 양태가 미륵불이 아닌 다른 것 부처님의 양태라 한들, 뭐 문제될게 있겠는가. 민중들이 이 부처를 미륵으로 모셨으면 그분은 이미 미륵인 것을!

월출산에는 명찰이 많다. 무위사와 도갑사 등 이름난 절은 물론이요, 부근에 법화종 절이 들어선 천황사지와 월남사지 등 대찰터와 선각종 옴천사라는 신흥종파의 총본산도 최근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중 각각 미륵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무위사와 도갑사로 향했다.

마을미륵 신앙의 성격이 짙은 월출산내 절이라서 그런지 무위사와 도갑사의 미륵은 그 양태부터 매우 서민적이다. 불신과 광배가 통돌로 되어 있는 것도 공통된 특징이다. 이중 무위사 미륵은 차라리 시골 아낙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그만큼 서민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는 미륵순례 1년여만에 비로소 마을미륵의 정수를 만났다는 기쁨에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두툼한 입술, 가분수의 형상이지만 안정감을 잃지 않은 몸매, 그리고 한쪽 어깨를 좁게 만들어 움직일듯 생동감을 불어넣은 저 조각수법이란! 대가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후 조각된 마애불이 아니기에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무위사를 빠져 나와 도갑사에 들렀다. 우리 풍수의 시조격인 도선국사의 탄생지인 곳이라 그런지 문외한의 눈에도 명당 중의 명당으로 느껴진다. 도갑사에서도 최고의 명당자리는 미륵전일 것이다. 왼편 위쪽으로 월출산의 기묘한 바위가 한 눈에 들어오고 정면에는 잔잔한 산자락으로 휘감겨 보는 이의 마음이 절로 포근해지고 가라앉는다. 바로 이곳에 미륵부처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다운 기상을 갖춘 호쾌한 표정의 미륵부처님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다가가 옷자락을 만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것은 천년세월을 두고 이 미륵부처님께 고민과 고통을 하소연했을 민초들의 서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민간 미륵신앙의 메카 월출산, 그리고 그 주위로 퍼져 있는 광활한 평지가 다한 곳, 해안가에 세워진 매향비 …, 영암과 그 인근의 강진, 장흥 땅은 미륵성지로 운명지어진 땅이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12개가 발견된 매향비 중 영암 땅에서만 3개의 매향비가 발견된 것은 이 고을에서 살아왔던 민중들이 미륵님이 주재하는 새 세상을 얼마나 간절히 염원했는가를 웅변으로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미륵이 아니더라도 영암은 신령스런 고을임에 틀림이 없다. 영암에 얽힌 한 전설은 영암사람들의 월출산과 그들의 땅에 대한 경외의 일단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이 고을에 쳐들어 왔다. 왜병들은 신기한 형상을 한 월출산을 보고 시샘을 내 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 3개를 아래로 굴러 내렸다. 신령스러운 산의 정기를 훼손해보려는 심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병이 돌아간 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래로 굴러떨어진 바위 중 한 개가 스스로 산 능선을 굴러 올라가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간 것이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스러운 바위, 즉 영암(靈岩)이라고 불렀다.

월출산을 뒤로하고 목포를 향해 달려간다. 매인 몸인지라 언제나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월출산을 바라보았다. 톱니바퀴 같은 산마루에 엉거주춤 올려 있는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바윈가? 저것이 그 신령스런 바위(영암)인가? 나그네는 영암의 지명에 얽힌 전설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월간베스트

최신글이 없습니다.

닉네임 0000.00.00
LOGIN
설문조사
행복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