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접속자 28
  • FAQ
  • 1:1문의
  • 새글

미륵

영지에 나타난 미륵삼존불.

5,964 2016.12.04 12:57

첨부파일

짧은주소

본문

영지에 나타난 미륵삼존불.

 백제 무왕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염문이 있었던 명군으로 역대 제왕 가운데 가장 로맨틱한 설화를 남긴 임금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 니는 일찍 과부가 되어 백제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외로히 살고 있 었는데 하루는 그 못 가운데에 사는 용이 그를 사모하여 몸을 변화하여 나 타나 그와 정을 통해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장(璋)이라 하였다. 그는 어려 서부터 늘 마를 캐어 팔아 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마 를 캐는 아이, 즉 서동(薯童)이라 불렀다. 그는 매우 재기(才器)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신라 진평왕의 세째딸 선화공주가 아름답기 짝 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 서울 경주를 가서 아이들에게 마 를 주고 사귀었다. 그리고 그 애들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쳤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려(정을 통한다는 뜻)두고
 서동방(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 이런 동요가 서울 장안에 퍼지자 대궐 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대왕마마, 지금 거리에서는 선화공주와 서동이란 아이가 정을 통해 밤마다 만난다 하옵니다. 한나라 임금님의 딸로서 그럴 수가 있읍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가?]
 [장안의 동남 동녀들로부터 선남선녀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자가 없읍니다
 그러나 선화공주를 불러다 문의해본 대왕은,
 [그러한 일이 없다 부인하였다.]
 [그러시다면 대왕님께서 오늘이라도 거리에  나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어 보십시요.]
 대왕은 밤이 되자 변복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달은 휘영청 밝은데 애들은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면서,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려 두고
 서동방을 밤에 안고 간다네.]
하고 노래 불렀다. 대왕은  기절초풍을  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서야 어찌 그녀를 궁안에 두고 출가 시킬 수가 없었다. 공주는 꽃과 같이 아름다웠다
솜털 같이 희고,  수정같이  맑은 몸매, 보는 자는 누구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소문난 여인, 자칫 그대로 두었다가는 나라와 백성을 함께 욕되게  할  여인이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였던 딸이지만 하는 수 없이 아버지 진평왕은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
 [저 아이를 밖으로 내어보내라. 그리고 누구도 그를 보호하지 말라.]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곧 그를 가마에 태우고 궁을 나와 옷을 갈아 입히고 평민과 같이 꾸며  거리에로 나왔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순금  한 말을 머리에 이고------
 그러나 거리로 나선 공주는 막상 가려해도 갈 곳이 없었다. 이리 갈까 망서리고 있는 그 때 서동이 나타나 일렀다.
 [어디를 가는 여인인지는 몰라도 제가 따라 모시겠읍니다.]
 모양은 허술하나 본 바탕이 준수해 별로 그 성의를 저바리고 싶지 않았다] 공주가 말했다.
 [남녀의 유별이 엄연한 이 세상이지만 내 갈 곳이 없으니  원하신다면 굳이 사양하지 않겠읍니다.]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여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백제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러날 산 숲, 들 가운데서 동침을 하여 피를 섞고  정을 통하였으므로 비로서 성명을 밝히니 공주는 그 사람이 바로  서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고 또한 동요의 영검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여자가 순금을내 놓으며,
 [이것은 어머니께서 주신 보물로 평생의 부를 누릴만한 재화입니다.]
 하였더니  [그런 것은 내가 옛날 마를 파던 산에 언덕과 같이 쌓여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위로하였다. 공주가 말을 듣고 함께 그  곳에  이르니 과연 황금이 언덕과 같이 쌓여 있었다. 서동의 손으로 금을  파서 한 노적을 이루니 공
주가,  [이 것은 참으로 천하에  진귀한  보물입니다. 당신이 지금 허락하신다면  저는 그것의 일부를 내 부모님께 보내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였다.그러자 서동은 곧  용화산  사자사 지명법사에게 찾아가 이 소식을 아뢰니 법사는 곧 불가사의한 법력으로 그것을 신라에 옮겨 그들의 소식을 함께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진평왕은  [비록 나라안 사람은 아니나 그의 총명예지에 고개를 숙이며 그의 사랑에  감사한다.]안부하였다. 이 소문이 나라 안(백제)에 퍼지자 나라안에선 그 를 모셔 곧 왕으로 추대하고 왕 이름을 무왕이라 하였다.
 무왕이 하루는 그의 부인 선화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 산을 향해 달리는데  뜻밖에 용화산 밑 큰 못 가운데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 둘이 함께 내려 부처님께 경배하니, 선화 가로되,  [이곳은 보통 영지가 아닙니다 허락하신다면 이 곳에 큰 절을 지어 뭇 중생 의 의지처가 되게 하겠나이다.]
하였다. 왕이 발원하여 그 곳에 절을 지으니 지명법사가 지도하고 백제 백성들이 함께 일하였다. 국가에서는 이 절을 왕이 세웠다 하여 왕흥사라 이르나 미륵과 관계 있으므로 미륵사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절은 지금 전라북도 익산군 용화산에 있는 미륵사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유명한 돌탑이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월간베스트

최신글이 없습니다.

닉네임 0000.00.00
LOGIN
설문조사
행복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