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염문이 있었던 명군으로 역대 제왕 가운데 가장 로맨틱한 설화를 남긴 임금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 니는 일찍 과부가 되어 백제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외로히 살고 있 었는데 하루는 그 못 가운데에 사는 용이 그를 사모하여 몸을 변화하여 나 타나 그와 정을 통해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장(璋)이라 하였다. 그는 어려 서부터 늘 마를 캐어 팔아 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마 를 캐는 아이, 즉 서동(薯童)이라 불렀다. 그는 매우 재기(才器)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신라 진평왕의 세째딸 선화공주가 아름답기 짝 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 서울 경주를 가서 아이들에게 마 를 주고 사귀었다. 그리고 그 애들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쳤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려(정을 통한다는 뜻)두고
서동방(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 이런 동요가 서울 장안에 퍼지자 대궐 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대왕마마, 지금 거리에서는 선화공주와 서동이란 아이가 정을 통해 밤마다 만난다 하옵니다. 한나라 임금님의 딸로서 그럴 수가 있읍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가?]
[장안의 동남 동녀들로부터 선남선녀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자가 없읍니다
그러나 선화공주를 불러다 문의해본 대왕은,
[그러한 일이 없다 부인하였다.]
[그러시다면 대왕님께서 오늘이라도 거리에 나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어 보십시요.]
대왕은 밤이 되자 변복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달은 휘영청 밝은데 애들은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면서,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려 두고
서동방을 밤에 안고 간다네.]
하고 노래 불렀다. 대왕은 기절초풍을 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서야 어찌 그녀를 궁안에 두고 출가 시킬 수가 없었다. 공주는 꽃과 같이 아름다웠다
솜털 같이 희고, 수정같이 맑은 몸매, 보는 자는 누구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소문난 여인, 자칫 그대로 두었다가는 나라와 백성을 함께 욕되게 할 여인이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였던 딸이지만 하는 수 없이 아버지 진평왕은 사람을 불러 명령했다.
[저 아이를 밖으로 내어보내라. 그리고 누구도 그를 보호하지 말라.]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곧 그를 가마에 태우고 궁을 나와 옷을 갈아 입히고 평민과 같이 꾸며 거리에로 나왔다. 어머니께서 싸주신 순금 한 말을 머리에 이고------
그러나 거리로 나선 공주는 막상 가려해도 갈 곳이 없었다. 이리 갈까 망서리고 있는 그 때 서동이 나타나 일렀다.
[어디를 가는 여인인지는 몰라도 제가 따라 모시겠읍니다.]
모양은 허술하나 본 바탕이 준수해 별로 그 성의를 저바리고 싶지 않았다] 공주가 말했다.
[남녀의 유별이 엄연한 이 세상이지만 내 갈 곳이 없으니 원하신다면 굳이 사양하지 않겠읍니다.]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여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백제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러날 산 숲, 들 가운데서 동침을 하여 피를 섞고 정을 통하였으므로 비로서 성명을 밝히니 공주는 그 사람이 바로 서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고 또한 동요의 영검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여자가 순금을내 놓으며,
[이것은 어머니께서 주신 보물로 평생의 부를 누릴만한 재화입니다.]
하였더니 [그런 것은 내가 옛날 마를 파던 산에 언덕과 같이 쌓여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위로하였다. 공주가 말을 듣고 함께 그 곳에 이르니 과연 황금이 언덕과 같이 쌓여 있었다. 서동의 손으로 금을 파서 한 노적을 이루니 공
주가, [이 것은 참으로 천하에 진귀한 보물입니다. 당신이 지금 허락하신다면 저는 그것의 일부를 내 부모님께 보내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였다.그러자 서동은 곧 용화산 사자사 지명법사에게 찾아가 이 소식을 아뢰니 법사는 곧 불가사의한 법력으로 그것을 신라에 옮겨 그들의 소식을 함께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진평왕은 [비록 나라안 사람은 아니나 그의 총명예지에 고개를 숙이며 그의 사랑에 감사한다.]안부하였다. 이 소문이 나라 안(백제)에 퍼지자 나라안에선 그 를 모셔 곧 왕으로 추대하고 왕 이름을 무왕이라 하였다.
무왕이 하루는 그의 부인 선화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 산을 향해 달리는데 뜻밖에 용화산 밑 큰 못 가운데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 둘이 함께 내려 부처님께 경배하니, 선화 가로되, [이곳은 보통 영지가 아닙니다 허락하신다면 이 곳에 큰 절을 지어 뭇 중생 의 의지처가 되게 하겠나이다.]
하였다. 왕이 발원하여 그 곳에 절을 지으니 지명법사가 지도하고 백제 백성들이 함께 일하였다. 국가에서는 이 절을 왕이 세웠다 하여 왕흥사라 이르나 미륵과 관계 있으므로 미륵사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절은 지금 전라북도 익산군 용화산에 있는 미륵사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유명한 돌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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